파견학교: 뮌헨 공과대학교
파견시기: 2019년 가을학기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가서 공부하고 여행도 하는 게 저에게는 대학 입학 후 꿈꿔왔던 하나의 로망이었습니다. 다만 1, 2학년 때는 동아리 활동에 집중하느라, 3학년 때는 학업과 연구에 집중하느라 교환학생을 고려해 볼 여유조차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 4학년을 앞두고 졸업을 준비할 시기였지만, 주위 사람들이 학번에 연연해하지 않고 교환학생을 갔다 온 후 입을 모아 추천하는 것을 들으며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3학년 겨울방학에 뮌헨공과대학교와 베를린공과대학교에 지원했고, 일 지망이었던 뮌헨공과대학교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환학생으로 갈 학교를 선택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두 가지는 학업과 여행이었습니다. 익숙해진 학과 공부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관점을 얻어가고 싶었고 그곳의 학생들과 비교해서 견줄만한 실력을 갖췄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학업에 대한 부담감이 덜한 시간을 유럽에서 보내면서 여러 국가를 방문하고 다른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고민 끝에 선택한 뮌헨공과대학교는 항공우주공학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학교임과 동시에 유럽의 중심에 있는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여행을 다니기에도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3월에 합격 통보를 받고 6개월을 기다린 후 9월 중순이 되어 나름의 목표와 거창한 계획들을 가지고 뮌헨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뮌헨에 짐만 두고 일주일간의 짧은 여행을 다녀온 후 다시 돌아왔을 때 저를 반겨준 것은 옥토버페스트였습니다. 맥주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가 제가 사는 곳에서 열리니 가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축제가 열리는 모든 천막은 사람들로 북적여서 입장하기조차 어려웠고, 사람들은 의자 위에 서서 건배의 노래를 부르는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시끌벅적한 옥토버페스트는 2주가량 이어졌고 뮌헨에서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 때로는 뮌헨으로 놀러 온 다른 교환학생들과 함께 출석 도장을 찍듯이 방문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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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1 뮌헨의 중심인 마리엔 광장 | Fig.2 옥토버페스트 천막 내부 모습 |
뮌헨의 자랑거리는 여럿 있는데, 기숙사 바로 뒤에 있어서 생각이 많은 날 걷기 좋았던 영국 정원이 그중 하나입니다. 워낙 넓어서 발길 닿는 대로 걷기 좋기도 하고 계절에 상관없이 강에서 서핑을 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축구 팬들이 열광하는 축구 경기장인 알리안츠 아레나가 뮌헨에 있어서 좋은 가격으로 축구 관람을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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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3 영국 정원의 여유로운 풍경 |
Fig.4 영국 정원에서 서핑하는 사람들 |
앞서 9월 중순에 한국에서 출국했다고 해서 의아해하시는 분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독일은 여름 학기가 4월에서 9월, 겨울 학기가 10월에서 3월까지 이어지고 학기 중간에 방학과 같은 lecture free period가 있어서 그 기간에 기말고사를 보거나 휴식을 취합니다. 저 또한 10월에 학기가 시작한 후 12월에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2주간의 짧은 방학이 있었고, 2월 첫 주에 모든 강의가 끝났습니다. 뮌헨공대에는 따로 항공우주공학과가 있지 않았고,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과목과 매칭할 과목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계과에 소속되어 네 가지 과목(‘Probability and Uncertainty Quantification’, ‘Design and Partitioning of Vibrating Systems’, ‘Engineering Dynamics’, ‘Space Environment and its simulation’)을 수강했고 그중 3월에 기말고사가 있는 확률 과목을 제외한 세 과목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독일어 과목을 카이스트에서 미리 수강하고 갔지만, 독일어 수업을 이해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기 때문에 영어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대부분의 학부 수업은 독일어로만 진행되어서 대학원 과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4학년 가을학기에 교환을 와서 대학원 과목을 듣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수업에서 특이했던 점은 모든 수업이 출석을 확인하지 않았고 숙제 또한 없었던 점, 기말고사 한 번으로 성적이 결정되는 점이었습니다. 대형 강의의 경우에는 카이스트의 강의와 크게 다른 점이 없었지만 20명 이내의 학생들이 수강하는 강의는 교수님과 학생들의 소통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책상을 두드리며 교수님께 감사를 표시하는 점도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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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5 뮌헨공과대학교 기계공학과 건물 내부 모습 |
Fig.6 기계공학과 도서관의 모습 |
카이스트에서와는 다른 일상을 사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습니다. 이런 일상을 두고 '마치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 같다.'라는 말을 자주 했을 정도로 한국과는 전혀 다른 하루를 보냈습니다. 뮌헨의 평범한 일상에서는 점심과 저녁거리를 결정하는 게 하루 중 가장 큰 고민거리였고, 제일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마트로 걸어가는 15분의 산책이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마트 중 하나인 알디(ALDI)에서 갓 구운 크루아상이 나왔는지 확인하고, 줄지어 서 있는 시리얼 중에 내일 아침에 먹을 뮤즐리를 고르는 것도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었습니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지하철로 15분 정도 걸리는 캠퍼스까지 이동하는 동안 지하철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썼고, 4시 반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갈 때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빨갛게 빛나는 알리안츠 아레나를 스쳐 지나가고 핑크빛으로 물든 뮌헨의 하늘을 감상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하늘 볼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때도 많았는데 뮌헨에 살면서는 매일 노을 지는 하늘을 보며 유럽의 하늘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뮌헨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은 뮌헨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파티였습니다. 뮌헨공과대학교는 카이스트 외에도 서울대, 포항공대,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부산대에서 교환학생을 파견하기 때문에 한국인을 만나기가 비교적 쉬웠습니다. 물론 교환학생을 오기 전에는 같은 수업을 듣는 외국인 친구나 같은 플랫에 사는 플랫 메이트들과 어울려 노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지만, 독일어를 공통으로 사용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짧은 영어를 사용하며 두루 친해지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신 뮌헨에서 새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생일에도 모이고, 크리스마스에도 모이고, 새해에도 모여 놀면서 누구보다 돈독한 우정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별일이 없는 날에도 베이킹을 하거나 한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외로움을 거의 느낄 수 없었고 즉흥적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여유를 가진 상태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도 몰랐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5개월 동안 다 함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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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7 뮌헨에서 살았던 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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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8 기숙사에서 마트로 가는 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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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9 크리스마스 이브에 모여서 만든 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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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10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각자 준비해 온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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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는 ‘뮌히너’가 되어 독일인의 일상을 체험해봤다면 주말에는 여행을 다니며 유럽 각국의 문화를 체험해보았습니다. 5개월 동안 제가 방문한 국가는 독일을 포함해서 총 10개국이며 23개의 도시를 여행했습니다. 이동은 주로 플릭스 버스를 이용해서 짧게는 4시간, 길게는 11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냈습니다. 플릭스 버스에서 99유로에 어떤 노선이든 상관없이 5번 이용할 수 있는 바우처가 있어서 장거리 여행 시에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저는 여행을 하면서 미술관에 방문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처음에는 '미술사와 시각 문화'라는 교양수업을 들어서 수업 시간에 배웠던 작품을 찾아보는 재미로 미술관에 방문했는데 사진으로 보는 것과 작품을 직접 마주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생생히 느꼈습니다. 많은 작품을 감상하며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고,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 앞에서 몇 분을 보내며 감동 받고, 딱딱한 돌로 만든 조각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기와 생명력에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여행에 공통된 하나의 테마가 있으면 여행이 더 풍성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 여행의 또 다른 테마는 '크리스마스 마켓'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가을학기 교환학생이 아니라면 쉽게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최대한 많이 다녔던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마켓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글뤼바인, 혹은 뱅쇼로 레드 와인에 여러 과일을 넣고 따뜻하게 끓인 음료를 뜻합니다. 이 음료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돌아다니다가 얼어붙은 손과 온몸을 녹여줘서 좋기도 하고 지역마다 와인 컵의 모양이 달라서 컵을 수집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크리스마스 마켓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마켓과 독일 드레스덴의 마켓이었습니다. 스트라스부르는 도시도 작고 마켓이 화려한 것도 아니었지만 거리의 조명 장식은 어느 곳보다도 아름다웠습니다. 반면 드레스덴은 조명 장식보다는 마켓 자체의 규모가 아주 컸습니다. 상점 지붕 장식이 움직이고 트리와 대관람차와 회전목마가 모두 있는 마켓의 전경이 정말 화려했습니다. 가을학기에 교환학생을 가게 된다면 이 두 곳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방문해 보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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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11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인상적이었던 모네의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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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12 프랑스 콜마르 크리스마스 마켓의 뱅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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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13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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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14 독일 드레스덴의 크리스마스 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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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간의 해외 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저에게 여유가 많이 부족했음을 느꼈습니다. 지난 3년 반 동안 학업, 동아리, 연구까지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왔는데 성과는 쌓여도 방향을 잃고 무작정 달려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고 몸이 점점 지쳐가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 저에게 '해야 하는 것'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난 지난 5개월은 넘치는 여유를 선물해주었습니다. 여유를 만끽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생각을 기록하고, 때로는 사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하루를 흘려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성찰하면서 더 단단하게 설 힘을 길렀고, 당연해 보이지만 그동안 부족했던, 그리고 필요했던 일상들로 하루하루를 채우면서 균형을 점차 찾아간 것 같습니다. 교환이 끝나고 일주일 이상 지난 지금도 제가 교환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는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5개월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투자할만한 가치는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다시 학기가 시작하면 미뤄뒀던 학업과 연구를 몇 배 더 노력해서 이어 가겠지만 교환 생활을 떠올리면서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듭니다.
교환학생을 다녀온 지금은 왜 많은 선배님과 친구들이 교환학생을 추천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교환학생만큼 더 넓은 세계에 자신을 던져놓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기르기 좋은 활동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 경험을 대학생 때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해외로 떠나기 전에는 비용 문제, 언어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혼자서 해외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용기의 문제로 걱정이 많았던 게 사실이지만, 일단 한번 시도해보니 나는 내가 단정 짓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바쁘다는 말로 미뤄두기에는 너무 소중하고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어 준 경험이었고, 무엇보다 대학 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와준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교환학생을 추천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어 고민만 하는 분들이 망설이지 말고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원문 한해윤[haeyoon74@kaist.ac.kr]
편집 박진우[jinpark57@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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