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에세이 (김우성 학사과정학생)
숙소 안에서, 필자 본인 툴루즈의 갸론 강
<INSA Toulouse 그리고 프랑스>
학부를 4년, 혹은 그보다 더 빨리 졸업하는 학생들과 달리 저는 11학번으로서 꽤 오랜 시간 동안 학부를 다니고 있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저는 최대한 학부생으로서 주어진 자유를 누리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동아리, 과학생회, 자치단체, 봉사활동, 군 현역 입대까지 나름 후회 없고 의미 깊은 학부 시절을 보냈지만, 주변에서 교환학생을 다녀온 친구나 선후배들의 말이 제 귀에 항상 맴돌았습니다. “교환학생 기회 되면 진짜 꼭 가.” 하나같이 공통된 말을 하는 그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또 내가 전혀 알지 못하던 새롭고 낯선 세상에서 살아보는 기회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쉬이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꽤 늦은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는 9학기째였지만 인 교환학생을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INSA Toulouse는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툴루즈라는 산업 도시의 INSA(Institut National des Sciences Appliquées, 국가응용과학원) 입니다. INSA는 우리 학교인 한국과학기술원처럼, 국립 이공계 그랑제꼴(고등교육기관)로서 툴루즈를 포함해 리옹, 스트라스부르 등 프랑스 내에 5개가 존재합니다. 교환학생을 선택할 때에는 교환 국가와 학교, 2가지를 잘 고려하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평소에 공학 분야 외에도 철학, 문학 독서를 즐겨 하며 생각하기를 좋아하고 바깔로레아 같은 교육 제도 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았어서, 이런 것을 다 아울러서 볼 수 있는 나라로서 프랑스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프랑스는 유럽우주국(ESA)의 핵심적인 나라로서 유럽의 항공우주기술을 선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중에서도 툴루즈는 항공우주 분야의 메카로서 Airbus의 본사와 거대한 규모의 항공우주박물관이 위치하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프랑스 국립항공대(ENAC)의 캠퍼스를 포함해서 많은 대학들이 있고 인구 중 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젊은’ 도시였던 점도 제가 INSA Toulouse를 선택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게다가 유럽 내에는 여러 다양한 나라들이 있고 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접근하기도 용이하기 때문에 프랑스 외에도 다른 나라의 문화나 분위기를 느끼기 용이하다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툴루즈는 프랑스 제 4의 도시로서, 프랑스 남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기후가 온화한 편입니다. 여름에는 햇빛이 내리쬐는 날도 꽤 많으며, 겨울에는 영하로는 잘 내려가지 않습니다. 다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 많다는 점만 참고한다면, 살기에는 쾌적한 환경입니다. 또한, 파리나 마르세유와는 다르게 치안이 좋은 편인 것도 이방인으로서 반가운 점입니다. 교통도 매우 잘 발달되어 있는데, 만 25세 미만에게 적용되는 혜택이 매우 많아서 지하철/트램/버스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권이 1달에 10유로밖에 되지 않습니다. 도시 한 가운데를 갸론 강이 가로지르고 있으며, 산책길로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운하가 있습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뻗어 있는 운하 양 옆에 심어져 있고 이 길을 따라 걸으면서 명상을 많이 했습니다. 도시의 건물들은 예로부터 이 지역의 황토 성분을 가지고 있는 토양으로 만든 벽돌로 지어져 불그스름한 느낌을 줍니다. 이 때문에 핑크빛 도시, 장미의 도시라는 말이 있기도 합니다.
툴루즈 시청사 광장
<같은 듯 다른 학교 생활과 수업>
INSA 의 커리큘럼은 우리 학교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많이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보통 5학년 과정으로서 우리로 치면 학부 3년 + 석사 2년이 합쳐진 것과 같은 커리큘럼을 따릅니다. 저는 4학년이었지만 여기에선 학부의 가장 시니어인 3학년으로 편입되어 수업을 들었고, 기계공학과에 속해져 있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모든 코스웍이 학년별 정확히는 학기 별로 거의 정해져 있고 학생들은 이를 따라서 수업을 듣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중고등학교 때처럼 각 학년에 맞춰져 있는 수업이 정해져 있듯이 몇 번째 학기에 들어야 하는 수업이 거의 대부분 정해져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같은 학과 학생들끼리는 1학년때부터 쭉 같이 수업을 듣고 자주 마주치니 매우 친하게 지내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학년의 수업을 수강하거나 같은 학년의 다른 학과 수업을 수강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있습니다. 또한 매 주 수업의 장소와 요일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 학교의 매 학기 개인별로 다르게 짜여지는 시간표라는 개념이 없고, 웹사이트에서 수업 관련 공지를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이공계 엘리트를 만들어내는 그랑제꼴이다보니 자기 분야에 있어서 극도의 전문성을 가진 학생을 길러내는 것이 이 학교 커리큘럼의 특징입니다. 특히, 수업 구성은 이론과 실제를 모두 중요시합니다. 예컨대, 이론과 수식을 풀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쇠를 깎는 기계를 다루는 법까지 매우 상세하게 가르칩니다. 졸업 후 바로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끔 교육한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학교 수업은 모두 불어로 진행됐고, 저는 불어를 교양 수업만 듣고 간 기초적인 수준만 구사했기 때문에 대부분은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을 통해서 도움을 얻거나 교수님에게 따로 영어로 설명해줄 수 있는지 부탁을 드렸습니다. 저는 석사 과목을 듣고자 했으나 학교측에서 학부생이기 때문에 학부과정에 편입시켜버렸고, 그 결과 고체역학이나 유체역학, 열전달 등 이미 수강했고 비슷한 내용을 배우는 수업을 수강했기 때문에 따라가기에 크게 무리는 없었습니다.
학생들의 수준은 그랑제꼴이기 때문인지 매우 똑똑한 편이었고, 모두들 열심히 공부하는 점이 인상깊고 그런 점이 제게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교환학생 중 우리 학교에서도 저 혼자 왔을 뿐 아니라 한국인마저 저밖에 없어서 수업을 통해 프랑스 친구들을 사귀고 친해지려고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학생들은 영어를 곧잘 해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학부과정 3년을 마치면 실무적인 경험의 습득 차원에서 반드시 인턴을 해야만 졸업이 가능했고 대부분 Airbus 관련 산하의 관련 업체나 연구소 등지에서 인턴을 해서 항공우주 관련 툴루즈의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 앞 표지판 매주 수업 시간표를 확인하는 웹사이트
<여행과는 다른 현지에서의 삶, 그리고 떠나는 여행>
교환학생은 확실히 여행과는 다릅니다. 보통 새로운 곳에서 잠깐 동안 머무르는 여행에서는 짜릿하고 강렬한 인상을 받으며 즐거운 순간들로 그 시간을 전부 채울 수 있습니다. 반면, 직접 현지에서 살아보는 것은 그런 짧고 강렬한 인상으로 채운 시간 이후에 맞닥뜨리는 평범하고 때론 지루할 수도 있는 시간들까지 포함합니다. 어쩌면 후자가 더 주된 삶의 양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삼시세끼 장을 사와서 밥을 직접 해 먹는 것부터 체류나 은행, 보험 등 각종 행정적인 일 처리까지 생각보다 훨씬 혼자서 해야하는 일이 많습니다. 저는 특히 우리 학교에서 파견된 유일한 학생이었을 뿐 아니라, 유일한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처음에 어리둥절한 것들이 많았고 많이 외로웠습니다. 게다가 도착한 후 3일이 되지 않아 핸드폰 액정이 완전히 문제가 생겨서 발이 동동 묶이고 새로 현지에서 구입을 해야 했었는데, 이처럼 예상치 못한 사고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처리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많다는 것도 현지에서 살기 때문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낯선 이방인으로서 살아가기에 프랑스는 꽤 좋은 나라라고 느꼈습니다. 밥 한끼를 해결하려고 해도 직접 요리해 먹는 것이 돈과 시간이 더 드는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드는 식료품이 저렴하기 때문에 주로 직접 해먹게 되고 그러면서 나름 요리 실력이 늘기도 했습니다. 또한, 프랑스는 똘레랑스(관용)의 정신이 시민들에게도 배어 있다고 느꼈는데, 프랑스인들에게는 ‘다정한 무관심’이란 말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다들 너무 튀지 않으려 하고 어떤 ‘기준’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게 살아가려고 하는, 그러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오지랖과 참견과 눈치를 주고받는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다르게,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입든지 뭘 먹든지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에 대해 눈치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먼저 다가가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물어볼 때에는 다정하게 다가와주고 대답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으로서 주눅들 필요도 없고, 사람들 속에 섞여서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면 그건 그것대로 먼저 다가가서 어울리면 되고, 반대로 혼자서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면서 마이웨이로 살고 싶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이 프랑스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염을 조금 길러 보기도 했습니다^^) 이는 짧게 관광지 만을 돌아보고 맛집에서 밥을 먹는 여행에서는 쉬이 관찰할 수 없고 오로지 직접 살아봐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라 더욱 소중하고 의미가 깊은 것 같습니다.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는 프랑스인들
낯선 타지에서의 삶이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도 분명 소중한 경험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다시 다른 곳들을 가보고 싶기도 했어서, 저는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프랑스는 철로가 매우 잘 깔려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코레일과 같은 국영철도회사인 SNCF를 통해서 기차를 타고 프랑스 내부를 여행했습니다. 만 25세 미만에게는 청소년 할인권이 있어서 50유로를 지불해서 1년짜리를 만들면 모든 정가 요금의 30~4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툴루즈에서 떼제베를 타면 파리까진 4시간 반이 소요되고, 아래로는 스페인과도 가까워서 여행하기에는 최적의 위치인 것 같습니다. 8월 중에 파리와 지베르니, 루앙, 툴루즈, 카르카손, 알비, 안시 등지와 아일랜드의 더블린 등지를 여행했고,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약 열흘간의 연휴에는 몽펠리에, 마르세유, 아비뇽, 아를, 칸, 니스 등 남프랑스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여행했습니다. 같은 프랑스 안의 장소라도 도시들마다 풍기는 분위기와 느낌이 제각기 다르고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비교 대조해보면서 다니는 것이 묘미였습니다. 저는 걷는 것을 정말 좋아해서 웬만한 도시들은 그냥 다 걸어서 도보로 구경하는 스타일인데, 그러다 보면 구석구석 골목골목까지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가장 많이 걸었던 적은 더블린에서 하루에 25킬로미터를 걸은 적도 있습니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 더블린 거리의 사람들
<파견 소감>
아직 파견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다 마무리하고 나서는 어떻게 느낄지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현재로서는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처음에 교환학생을 오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채롭고 재미있고 또 때론 힘들고 외로운 시간들이 모두 저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 것 같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나 스스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고민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이는 앞으로 진로를 선택할 때에 분명 큰 영향을 주는 요소가 됩니다. 교환학생이라는 기회를 준 학교에 참으로 감사하고 학부생으로서 다시는 없을 이 기회를 잘 살려서 늦게나마 와 있는 것도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졸업이 늦어지긴 했지만, 남들이 갖지 못할 나만의 소중한 시간과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젊음은 알 수 없고, 늙음은 할 수 없다”는 프랑스 속담이 있습니다. 저를 감싸고 있던 무지(無知)를 한 꺼풀 벗겨낼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교환학생이 아니라면 다른 데에서는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교환학생을 갈지 말지 주저하고 계신 학우 분이 계시다면, 젊음을 무기로 꼭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시선과 어디서든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카르카손의 중세시대 성 앞에서
원문 김우성[kimws92@kaist.ac.kr]
편집 김태진[sll9794@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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