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인터뷰 : 최한림 교수
1. 간단한 자기소개 부닥드립니다.
저는 최한림이고요, 카이스트에는 2010년 3월에 부임했습니다. 학부는 카이스트 항공과를 나왔고, 탁교수님 아래서 석사를 하고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카이스트에 돌아왔습니다. 10년 가까이 지나서 오래된 일 같네요. 이번 학기에는 항공우주시스템설계1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 연구분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우리 연구실은 사실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요, 이름은 일단 정보 및 제어시스템 연구라고 합니다. 정보나 제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하며 너무 얘기가 길어질 것 같고, 쉽게 말하자면 항공우주 시스템을 똑똑하게 만드는데 필요한 알고리즘이나 이론을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똑똑하게’라 하는 것은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찾아준다는 뜻도 있고, 시스템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연구한 응용분야는 무인기이지만, 레이다와 같은 센서를 좀 더 똑똑하게 활용하는 연구도 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인공위성과 같은 우주시스템에도 관심을 두고 있는데요, 인공위성에서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정보를 더 효과적으로 얻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해지고 있어 이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연구실에서 하는 연구는 특정 시스템에 국한되기 보다는 Platform-Independent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연구나 수업에서의 교수님만의 신념이 있나요?
수업은 잘하려 하는데 생각보다 힘듭니다. 우선 체력적으로도 힘들죠. 1시간 반 동안 서서 얘기하고, 그걸 16주동안 하면서 학생들의 피드백을 반영해서 수업을 계획하고 이끌어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제어문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수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학생들에게 바라는 부분이기도 한데, 수업을 너무 점수를 따기 위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학원을 가기 위한 것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도 있지만 내가 이것을 통해 무언가를 배웠다, 생각의 방식이 바뀌었다, 혹은 새로운 사람과 친해졌다는 것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나름의 것을 얻는다는 차원에서 수업을 대하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우리 학과 학생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고요.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는데요, 첫 부임 때 비행 동역학 및 제어 과목을 맡았을 때 숙제를 채점하면서 신기한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당시 싱가폴 난양공대, 일본 규슈대에서 온 교환학생들도 많이 들었는데, 이 친구들 답안을 보면 같은 학교 출신끼리 많이 도와가며 했다는 게 눈에 띄었어요. 반면 우리 학과 학부생들의 답안은 정말 서로 숙제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얘기도 안 한 듯한 답안이었어요. 그게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데, 뭔가 너무 정이 없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로는 어떤 수업이든지 첫 시간에 숙제는 친구들이랑 같이 하라고 얘기를 해요. 대신, 답은 자기만의 답을 쓰고 어떤 친구와 상의했는지 답안에 써 놓으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게 어찌 보면 논문을 쓸 때 기존 연구 대비 자신의 기여도를 분명하게 기술하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논문 연구라고 하는 것이 뭔가 세상을 바꿀 엄청난 것을 발견하고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뉴턴이 말한 거인의 어깨 위에서 올라가는 정도도 너무 어려운 거고, 그 어깨 위에 아주 살짝 물뿌리개로 물 한 번 뿌린 정도면 잘 한 거예요. 요즘 많이 얘기되는 연구윤리라고 하는 건, 물만 한 방울 떨어뜨린 거면 그렇다고 솔직하고 정확하게 얘기하라는 거예요. 어떤 연구도 다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담았기 때문에 기여도가 작다고 탓할 수는 없어요. 그 기여도를 제대로 얘기하지 않았을 때에 문제가 되는 거죠. 숙제 얘기하다가 논문 얘기가 되어 버렸는데요, 제 생각은 숙제에서 5퍼센트를 자기가 기여했으면 그렇게 적으면 된다는 거예요. 물론, 그걸 어떻게 평가하는 것은 또 평가하는 사람의 판단과 재량인 것이고요. 아, 그리고 항공우주와 같이 대형 시스템을 개발하는 분야에서 혼자 할 수 있는 별로 없어요. 숙제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은 나중에 함께 일하게 될 동료와 함께 고민하는 연습을 하라는 의미도 있고요.
연구에 있어서의 신념은.. 좀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람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사람을 잘 이해하려고 합니다. 항공우주 시스템을 개발하는 과정도 결국은 사람이, 특히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을 잘 이해하는게 필요해요. 제어 분야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게 어떤 현상에 대해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 즉, 물리학에 기반을 한 모델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내가 얻은 측정값, 데이터를 믿을 것인가, 그 밸런스를 이루는 것이 사실 요즘 핫한 머신 러닝이 풀고자 하는 문제에요. 그런데, 이걸 좀 더 들어가보면 과학적 발견이 연역적 추론에 의한 것인지, 귀납적 추론에 의한 것이냐로 생각해 볼 수 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냐 베이컨의 경험주의냐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서 플라톤 대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가는 문제에요. 동양에서는 퇴계의 주리론 대 율곡, 기대승의 주기론도 같은 문제이구요. 어쩌면, 왜 사람은 수천년 동안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가도 재미있는 연구 문제겠죠. 항공우주시스템을 똑똑하게 만드는 연구가 이런 류의 철학적인 고민들과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결국 다 사람을 위해서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4. 항공우주공학과 학생들에게 추천하시는 책이 있나요?
대답하기 쉽지 않은데요, 무엇보다 저부터 요즘 책을 잘 못 읽고 있어서요. 예전에 제가 학부에 들어올 때 면접에서 KAIST 재학 중에 책 쓰고 싶다고 했었는데, 그 대답이 너무 무색해지네요. 정확히 책을 하나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공부 관련 내용이든, 진로든, 인간은 왜 이런 것 인지든, 이게 전공과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 관련이 있어요. 연구 측면 신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 하나 생각나는 게 있네요. 딱 책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을 추천합니다. 이 책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은 좋은 점을 얘기하겠지만, 제가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착한 사람들이 좋은 것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서로 간에 겪는 갈등과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지금 세대는 좀 덜하겠지만 우리 세대만 해도 뭔가 나쁜 사람, 나쁜 일이 있고 그걸 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많이 받아왔어요. 그런데, 아주 다행스럽게도 우리 학과 학생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정형화된 나쁜 사람은 별로 안 만나고 살아요. 대신, 착한 사람이라고 불러야 하는 사람들을 주로 만나며 살죠. 그런데, 이들과 어떻게 교류하고 소통하고 살아야 할지는 도덕교과서에서 잘 안 가르쳐주는 것 같아요.
5. (학부생 질문) 대학원생/대학원을 생각하는 학부생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하고 싶은 말은 많이 있는데, 지금까지 제 연구실에 온 모든 학생들에게 한 얘기이기도 한데, 인생에서 길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아니에요. 예전 같으며 카이스트 입학해서 박사까지 하는 것이 정석인 것처럼 여겨졌지만, 연구 개발에 힘써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게 유일한 길이 아니거든요. 박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이기보다는 박사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연구실에 들어온 모든 대학원생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박사를 하는 건 인생에서 그야말로 옵션이라고. 학생들이 박사과정을 많이 가면 연구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교수 입장에서는 좋은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얘기해 볼게요.
박사과정을 한다는 것은 20대 젊은 나날을, 짧아야 4년 되는 시간을 써야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거에 대한 기회비용도 생각을 해봐야죠. 사회에 나가서 다른 일을 하면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 수도 있고요. 현실적으로 석사를 하지 말라고는 못하겠어요. 연구개발 업무를 하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석사학위는 필요하니까요. 그렇지만, 박사는 정말 신중하게 생각하고 정말 하고 싶고, 해야하는 이유가 분명할 때 시작하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박사 과정 동안 하게 되는 연구는 불확실하고,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리고, 또, 꽤 많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해요. 박사 논문은 중요하고, 어렵고, 아무도 제대로 못 푼 문제를 내가 잘 풀어야 쓸 수 있어요. 그런데, 중요하고, 어렵고, 아무도 못 푼 문제는 당연히 (내가 아인슈타인이 아닌 이상) 내가 풀기에도 어렵죠. 특히, 지도교수도 어떻게 푸는지 모르는 문제에요. 너무 단순하게 일반화하는 것 같긴 하지만, 석사논문은 대개의 경우 지도교수가 답을 아는 문제를 확인하는 정도가 많아요. 그런데, 박사논문 주제는 지도교수가 이렇게 접근해보면 괜찮지 않을까 정도를 아는 문제에요. 블로그에 대학원 생활 관련된 글을 많이 쓰시는 권창현 교수님 글을 빌리자면 “지도교수가 모르는 문제를 풀어서 지도교수가 알게 되면 졸업”하는 게 박사과정이에요.
어렵고 새로운 문제가 한 번에 풀리지는 않을 것이고, 내가 풀 수 있으면서 충분한 기여도를 얘기할 수 있도록 문제를 잘 정의해야 하죠. 그리고, 풀었는데 안 풀릴 수도 있고, 아이디어 자체가 틀렸을 수도 있고요. 맞게 풀었는데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다른 사람이 먼저 풀 수도 있고요. 그래서, 박사논문은 전공 지식만 가지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멘탈과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능력,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관리/감당할 수 있는 역량, 각종 판단과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걸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종합적으로 필요하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정말 하고 싶고, 해야할 이유가 있지 않으면 그 과정이 많이 힘들죠.
너무 힘들다고만 얘기했는데, 다행히 혼자 하는 것은 아니에요. 지도교수가 같이 고민해 주는 척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숫자로만 보면 박사과정 졸업 실패 비율이 아주 높은 것도 아니에요. 단지, 그 퍼센티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게 뭔지를 알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죠.
또 하나 얘기하자면, 박사논문을 쓰면서 특정 분야를 굉장히 깊이 들어가요, 근데 그걸 졸업 후 현장에서 실제로 쓰느냐 하면, 교수가 되는 게 아니면 거의 안 써요. 그럼 그걸 왜 할까요? 특정 문제에 대해서 깊이 들어가는 경험을 통해서 어떤 문제라도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소양을 쌓는 거라고 생각하면 그 이유가 보일 것 같아요. 어떤 분야든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과는 과정은 비슷해서 그 일련의 과정을 겪고 나면, 뭔가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되어있는 거죠. 저는 대학원이란 연구를 위해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라 교육을 위해 연구를 하는 곳이라 생각해요. 학교란 교육을 하는 곳이고, 학생에게 어떤 영향을 심어주는 것이 교육일텐데, 연구를 통해 어떤 어려운 문제를 푸는 방식이나 습관을 배우는 곳이 대학원이라 생각해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학교 교수님 중에서도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을 거에요. 세계적인 연구를 선도해야 하는 카이스트만의 사명이 있고, 연구를 위한 교육의 측면도 중요하지만, 저는 교육을 위한 연구라 생각하고 접근을 하죠.
대학원 생활에 대해선 학부생들은 잘 모를 거예요. 랩이라는게 지도교수를 중심으로 한 모둠이고, 문화가 또 있거든요. 그래서 교수님의 지도철학이나 연구 내용에 의해 문화가 영향을 받고, 랩 간의 문화가 차이가 큰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여러 컬쳐가 존재하는 게 좋은 건지, 아니면 어느 정도는 카이스트의 전체적인 학풍을 만드는 것이 좋은 건지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랩마다 벽을 허문다고 해야하나? 문화를 공유하고 교류하는 차원에서 그런 활동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요.
6. 마지막 하고싶은 말씀이 있나요?
이런 생각을 해요. 우리 학과는 교수님들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시는 학과예요. 다른 학과, 대학에선 배울 수 없는 것을 가르치고 역량을 키워줄 수 있을지, 그런걸 커리큘럼에 반영을 하고 그러세요. 지속적으로 방향성을 가지고 노력하고 계시고, 연구에서도 각자 굉장히 잘하시는 분들이고. 카이스트가 가지는 사명과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현재 상태에 안주하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혁신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 학과도 계속 노력 중이고요. 학과 교수님들 숫자가 많지가 않아서 뭘 하려면 힘들긴 하지만, 학생들이랑 동문들이 도와주면 더 잘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첨언으로, 요즘 대학원 입시를 해 보면 특정 분야로 편중이 좀 심한 것 같아요. 그 분야가 제가 연구하는 분야라 손해 볼 건 없는 상황이긴 한데요, 지금 유행하는 분야가 10년 후에도 그럴지는 아무도 몰라요. 재미있는 거여서 고르는 것은 괜찮은데, 이게 제일 유망하다 해서 고르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 학과에서 연구하고 있는 주제와 분야 중에 유망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그냥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제일 재미있을 것 같은 걸 공부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대학원에 간다면 공기역학이나 연소공학을 공부할 것 같아요. 제어 분야가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 두 분야가 더 안 풀린 문제들이 많이 있거든요. ^^
Interview 유환균 [owls5718@kaist.ac.kr]
이승준 [seongjun1664@kaist.ac.kr]
편집 이재호 [barbossa0412@kaist.ac.kr]
Comment 0
- Total
- 56호
- 55호
- 54호
- 53호
- 52호
- 51호
- 50호
- 49호
- 48호
- 47호
- 46호
- 45호
- 44호
- 43호
- 42호
- 41호
- 40호
- 39호
- 38호
- 37호
- 36호
- 35호
- 34호
- 33호
- 32호
- 31호
- 30호
- 29호
- 28호
- 27호
- 26호
- 25호
- 24호
- 23호
- 22호
- 21호
No. | Subject |
---|---|
Notice | 자유기고 모집 |
Notice | Fund Raising |
10 | Photo Album |
» |
특집인터뷰 (최한림 교수)
![]() |
8 |
연구실탐방 (Smart Systems and Structures Lab.)
![]() |
7 |
동문소개 (KISTI, 조금원 부원장)
![]() |
6 |
학부생 소식
![]() |
5 |
항공우주공학과 News
![]() |
4 |
신규사업 소개
![]() |
3 |
해외탐방 기고문 (표재찬 석사과정학생)
![]() |
2 |
항공우주 핫이슈 (조종면 없이 비행하는 항공기 MAGMA)
![]() |
1 | Fund Raising |